곰표70주년

‘곰표’를 사랑하는 노포는 항상 우리 주변에서,
유명하지는 않지만, 70여년 전통의 ‘곰표’ 밀가루와 함께
자신만의 길을 꿋꿋이 지켜나가는 사장님들을 만나는 코너입니다.
대한제분 ‘곰표’의 신입사원의 시각으로 다소 전문적이지는 않지만
‘곰표’를 사랑하는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취재문의 – mkt@dhflour.co.kr

내호냉면

“1948년에 태어나 피난 와서 부산 남구 우암동에 70년째 살고 있는 내호냉면의 3대 회장입니다.
제가 3살 때 흥남부두 1∙4후퇴 때, 피난 와서 53년도에 남구 우암동에 왔어요.

식당은 1919년도에 1대 외할머니가 함경남도 흥남시 내호리에 냉면 장사를 처음 시작했습니다.
30년 정도를 처녀 때부터 했어요. 내호시장 입구에서 장사를 하시다가 전쟁이 나고 1∙4후퇴 때
마지막 배를 타고 내려왔죠. 내려와서 거제도에서 1년 정도 있다가 우암동에 있는 피난민 수용소로 옮기고
이 일대에서 자리 잡은 지가 70년이 되었습니다.
내호냉면은 고향의 이름을 따다가 지은 이름이죠.
이북에서는 '동춘면옥’이었어요. ”

‘부산’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음식은 단연 밀면일 것이다. 그중에서 내호냉면은 무려 4대째가 운영 중인 100년이 넘은 밀면집이다. 함경도 흥남에 있는 내호리에서 ‘동춘면옥’으로 시작된 내호냉면은 피난 후 70년 넘게 부산에서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피난 후 2-3년만 기다리면 고향에 다시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벌써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 흘렀다.

“1954년에 2-3년만 있으면 고향에 간다는 희망이 있어서 길가에다 두 필지로 집을 지어놓고 살았어요.
한 2년만 있으면 갈 줄 알았는데 못 갔죠. 그런데 식구가 불어나니까 판자를 더 세우고, 식구도 불어나고 손님도 많아서 몇 년 있다가 또 판자를 세우고 위로도 짓고 하다 보니 8필지가 되었어요.
지금은 이렇게 못 하지만 옛날에는 다 그렇게 살았죠. 그러다 보니 옆 필지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 숨소리까지 다 들렸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자리에서 계속하는 중입니다. 100년 동안 한 주인이 계속 직접 운영하는 곳은 저희밖에 없을 거예요.
저희 집사람이 73인데 아직도 직접 조리를 합니다.”

이북에서부터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를 이어 직접 조리까지 하는 밀면집은 전국에서 내호냉면이 유일할 것이라고 한다. 사장님의 고향은 감자가 많이 났던 함경도 지방으로, 밀가루가 없으니 감자 전분을 사용해서 쫄깃한 면발을 가진 냉면을 많이 먹었다고 한다.
같은 냉면이라도 지역마다 면이 다른 이유는 몰랐는데 사장님 덕분에 이유를 알게 되었다.

“옛날 이북에서는 밀가루라는 게 없었어요. 대신 함경도에서는 감자, 평안도와 황해도는 메밀, 남한 쪽은 고구마가 많았습니다. 함흥냉면을 ‘농마국수’라고 하잖아요. 평양냉면은 메밀면을 쓰는데 함경도는 감자녹말을 사용해서 면을 만들어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 거예요. ”

쫄깃한 식감의 함흥식 냉면을 먹고 싶었던 피난민들이 감자가루 대신 남쪽 지방에 많이 나는 고구마 가루와 밀가루를 섞어 만든 것이 밀면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밀면과 냉면의 차이가 궁금했는데 사장님의 이야기로 해소가 되었다.

“추운 지방인 함경도에는 감자가 많이 나왔어요. 그래서 이북에서는 감자가루, 감자 전분으로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피난 내려오니까 따뜻한 밑에 지방에는 고구마밖에 없고 감자가 잘 없었어요. 감자를 구하기 힘드니까 고구마를 바짝 말려서 그 가루를 내어 냉면을 만들었죠. 50년도부터 60년도까지는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1959년도에 밀가루가 들어왔어요. 그런데 너무 비싸고 구하기도 어려웠죠.
동학성당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거기의 독일 신부가 있었어요. 그곳에서 강냉이죽과 밀가루를 배급해 줬죠.
여기가 부둣가니까 구호물품으로 밀가루가 들어왔는데 그걸 조금씩 나눠줘서 배급을 좀 받고 그랬죠. 피난 나온 사람들이 냉면은 너무 먹고 싶은데 너무 비싸고, 감자가루도 구할 수 없으니 고구마 가루랑 밀가루랑 섞어서 면을 만들었습니다.
그게 밀면의 시작입니다. 1대 할머니는 몇 년 있다가 돌아가시고 제 모친이 시작했죠.”

“제일 처음에는 구호물자로 받은 밀가루 쓰다가 무궁화를 썼죠. 그때 이 지역에는 그것밖에는 없었거든요.
곰표가 나온 지는 오래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부산까진 소문이 안 났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쓰지 않았죠.
그 당시에는 들어오는 대로 아무거나 다 썼어요. 그러다가 곰표 냉면 가루가 나왔어요.
어느 날 재료 갖고 오는 친구가 곰표 한 번 써보라고 해서 써보니까 옛날 밀가루보다 부드럽고 면 자체가 달라요. 다른 것도 써봤는데 곰표가 포장도 참 예쁘고 디자인도 잘 해놓고 깨끗해요. 무엇보다 배합이 참 잘 맞았습니다. 딱딱한 게 없고 부드러워서 기계로 면을 빼고 있지만 아주 잘 뽑힙니다.
곰표로 바꾸고 나서 저희 반죽하는 직원이 ‘사장님, 반죽 가루가 많이 부드럽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조금 비싸지만 곰표에서 나온 밀면 전용 밀가루를 사용하고 있어요.”

‘밀면 전용’ 밀가루가 따로 생산이 될 정도로 부산은 밀면의 고장이다. 일반 국수용 밀가루와 정확히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알지는 못하지만, 밀면 특유의 쫀득하면서도 부드러운 면발에 안성맞춤일 것 같다.

내호냉면에서 먹은 밀면이 인생 첫 밀면이었다. 일반 냉면보다는 면발이 조금 더 두꺼웠고, 중화요리 면보다는 얇았다. 내호냉면 밀면의 식감은 매우 특이했는데, 얇고 부드러운 떡을 먹는 것처럼 쫀득쫀득했다. 사장님이 면을 ‘떡처럼 치대서 만든다’고 하셨을 때
잘 이해가 안 갔는데, 한 입 먹고 어떤 느낌인지 바로 이해가 갔다. 새콤달콤한 육수도 정말 맛있었다.

평소 물냉면을 선호하지만, 내호냉면에서만큼은 '비빔파;’가 되었다. 물밀면도 맛있었지만, 비빔냉면의 양념과 면발이
정말 잘 어울렸다. 양념이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감칠맛이 좋아서 계속 들어갔다. 원래는 물밀면을 시켰지만,
같이 간 일행의 비빔밀면을 더 많이 먹었을 정도로 비빔밀면의 매력에 빠졌다.

“방송국의 한 프로그램의 첫 방송에 저희가 밀면 식당으로 나갔어요. 그때부터 밀면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죠.
예전에는 밀가루가 많이 없었는데 70년대쯤 무궁화표가 부산에 생겨서 그걸로 밀면을 만들었죠. 밀가루와 고구마 전분의 비율을 맞춰서 노하우를 만들었습니다. 7-80년대부터 소문이 좀 많이 나게 되었어요.
밀면은 반죽하는 면 자체가 달라요. 밀가루를 떡처럼 계속 치대서 만듭니다.”

내호냉면의 한쪽 벽면에는 누군가 손으로 그린 듯한 지도가 걸려있었다. 고향을 그리워하신 사장님의 아버지께서 눈물로 쓰신 유언장이라고 한다. 내호냉면의 곳곳에는 100년의 사연이 담겨있다. 사장님 가족의 사연은 우리 모두의 사연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버지가 그린 약도가 박물관에 가 있어요. 여기 붙어있는 유언장을 보시면 알겠지만 마지막 달력을 찢어서 약도를 그리고 유언장을 쓰셨는데, 눈물자국도 많아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쓰셨습니다. 아버지가 참 배운 분이셨어요. 한이 서려있는 유언장입니다. 쓰다가 지우고 쓰다가 지우고... 1950년 1월 4일 흥남부두 철수 때 그 약도에요.
빈 곳이 있는데 그걸 제가 완성을 시켜야 하는데 통일이 되지 못해서 완성을 시키지 못했어요.
내일이라도 통일이 되면 바로 가서 완성을 시킬 거예요. ”

부산광역시 남구 우암번영로 26번길 17

051-646-6195

10:30 – 20:00

#곰표가 사랑한 노포#내호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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